[객석에서] 뮤지컬 ‘랭보’, 뭔가 빠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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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0 14:52 | 최종 수정 2019.10.02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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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뮤지컬 '랭보' 포스터
공연을 보기 전 천재 시인이라 불리는 랭보의 삶을 훑었다. 실존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그린 작품을 볼 때 대부분의 관객들이 으레 하는 준비 자세다. 하지만 뮤지컬 ‘랭보’의 경우는 그 준비과정을 무색하게 했다. ‘랭보’하면 떠오르는 그것들을 무대 위에서 찾기엔 다소 어려움이 따랐기 때문이다.
뮤지컬 ‘랭보’는 예술가의 삶과 그가 남긴 작품을 그렸다기보다 이를 ‘빌려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 싶다. 애초에 뮤지컬로 만들어진 ‘랭보’에서 예술가의 실제 삶을 찾는 게 무의미할 지도 모르겠다. 이들 역시 철저하게 예술가의 삶을 그리기 보다는 베를렌느와 들라에가 랭보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들 기억 속의 랭보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형식을 띄고 있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랭보와 베를렌느의 사랑을 허둥지둥 넘기려하는 듯한 분위기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초연과 비교하면 약간의 변화는 있었다. 관계자는 ‘랭보’ 연출가가 초연 때보다 스토리상에서 랭보와 베를렌느의 사랑을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하길 바랐다고 전했다. 하지만 내용의 변화는 없었다. 그나마 배우들의 눈빛을 통해 ‘짐작’하는 수준이다.
단순히 동성의 사랑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는 것 자체에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관계는 실제 인물들과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던 터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그 중요한 ‘사랑’이 모호하게 그려지다 보니 랭보의 파격적인 작품세계를 이해시키는 것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심하게 흔들리는 베를렌느의 감정 역시 그렇다.
예술가의 삶의 일부, 혹은 전체적인 분위기와 그의 몇 작품들을 빌려와 만든 작품으로만 본다면 담백하고 잔잔하게 관람하기에 무리가 없다. 랭보의 시에 선율을 입히면서 극 자체를 하나의 ‘음이 있는 시낭송회’로 느끼게 한다. 또 랭보라는 인물의 흔적을 쫓는 과정 역시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르고, 적절한 곳에서 갈등과 이별, 그리고 깨달음을 얻는 훈훈한 마무리까지 이어지면서 창작 뮤지컬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랭보’가 초연 당시보다는 조금 성장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시도한 것도 그렇고, 관계자에 따르면 가사나 대사 혹은 멜로디의 일부를 수정했다. 음향적인 부분도 추가됐다. 거듭될 공연을 통해 이번 재연처럼 조금씩 변화되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간다면 충분히 창작 뮤지컬로서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박수를 보낸다. 특히 이번 재연에서 처음으로 랭보를 연기하게 된 백형훈은 서른셋의 나이에도 청소년기부터 시작되는 극중 인물을 표현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또 자신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파리의 시인들을 ‘앉은뱅이’라며 도발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예술가의 파괴적이면서도 예민한 감성을 감미로운 목소리와 노련한 내공으로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함께 ‘랭보’를 이끄는 배우들과의 호흡도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랭보’는 오는 12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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