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내 일을 위한 내 일 - 고인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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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자 승인 2022.01.13 17:12 | 최종 수정 2022.01.13 17:11 의견 0
강화도 고인돌 (이미지= 강화군청)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남방식·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더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고인돌 [dolmen, 支石墓(지석묘)]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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